본문 바로가기

뭐라도 쓰고 보자

19.08.25. <깃털 도둑The Feather Thief: Beauty, Obsession and the Natural History Heist of the Century>

미래를 향해 애타게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엔 존재한다.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미래에서 온 인물을 만나 친해지고, 그가 미래에서 볼 수 있도록 문화재를 복원. 보존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에게는 평생에 걸쳐 미래로 써내려갈 편지겠지만, 미래에서 온 이에게는 다시 미래로 돌아가는 순간 받아 볼 수 있는 셈이다(시간여행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복잡한 쟁점을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이어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치면 말이다).

나는 그 간절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동안 학내에 있는 기록물 전시관에서 도슨트를 한 적도 있었다. 제각기 다른 이유에서였겠지만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고 그 기록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누군가는 그 모든 기록을 보관했고 관리했다.  아무렇지 않게 진열장 안에 놓여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다 해 그 기록들을 지키고 있었다. 전시실에 화재가 날 경우 물이 아닌 가스가 나와 산소를 없애면서 질식소화시키는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불이 나면 1분 이내에 특정 선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설비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어쨌거나 질식할 수 있는 결기로 우리는 과거를 보존하고 있었다.

<깃털 도둑>은 그렇게 축적되고 보존되어 온 과거를 훔치고, 현재의 노력과 미래의 다가오지 않은 선물을 훔친 도둑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그 도둑의 이야기를 캐내어 길어올린 저자의 이야기라고 하자. '플라이 낚시'에 쓰이는 곤충 형상의 미끼인 '플라이'를 만들기 위해 조류 표본을 훔친 도둑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영국의 '트링 자연사 박물관'에서 299마리의 조류 표본을 훔쳐 그 중 절반 이상을 훼손한 범죄자, 그러고도 의사 소견서를 통해 집행유예만을 받았고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반성하지 않는 인물이니 말이다.

저자는 조류 표본을 만들고 인류 지식을 확장하기 위해 오지로 뛰어든 알프레드 월리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플라이 타잉에 미친 아이였던 에드윈 리스트, 그리고 플라이 타잉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 경찰, 박물관 직원 등을 만나가며 보물과 같은 기록을 정리해냈다. 그 자신의 여정을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으나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하고 주장하는 책은 아니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그저 몇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리라. 함부로 썼다가는 법률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변호사인 저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렇지만 그가 실제로 보고 들은 내용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어떠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백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온 조류 표본들이 호사가적 취미를 위해 희생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플라이 타이어들은 진정성을 말하겠지만, 단지 그것은 플라이 타잉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과 소수의 집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핑계가 아닐지.

 

'뭐라도 쓰고 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18.  (0)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