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씨/문학

시든 별들의 이야기 - 정미경, <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의 작품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 저
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저
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저
예스24 | 애드온2


정미경의 글은 기품 있었다. 모든 치장을 다 치우고 나면 치졸한 치정에 지나지 않을 내용인데, 그것이 마치 '별'인양, '장미'인양 빛나곤 했었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헛헛한 관계담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발칸의 장미', 그 허술한 무언가의 에센스를, 온기가 되다 만 온기를 건네는 이야기였다. <아프리카의 별>은 아예 배경을 옮겼다. 정말 멀리 갔다. 모래가 스며드는 나라에서 모든 인물은 서로에게 미로가 되었다. 정미경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쉬웠지만, 누군가에게 정미경의 작품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허술하고 허무한 삶 속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빛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는가. 오직 작품 그 자체로서만 설명할 수 있는 글들이었다.

항상 좋아했던 이 작가가 올해 초에 별세했다. 나는 그것을 올해 말이 되어서야 알았다. <밤이여 나뉘어라>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작가. 어찌 보면 내가 한국 문학을 읽기 시작한 때 만난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밤이여 나뉘어라>가 대상을 받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처음으로 샀던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이제 앞으로 내가 겪을 세계는 정미경의 작품들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는 세계다.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별세했다는 것이 이렇게 잔잔하니 힘든 일이었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작가가 으레 그래왔듯이, 내면의 불꽃에 천착한다. 분명히 활활 타오르고 있건만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불꽃. 인물들을 사랑하는 듯 마는 듯 사랑하고, 헤어지는 듯 마는 듯 헤어진다. 이 허무함을 그저 허무함이라고 불러버리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가 존재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겉으로 터트리는 대신 앞으로 불질러버린다. 아무에게도, 그 자신들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활활 태우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걸어간다.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스스로 모르는 척 하는 이 새침한 태도는, 사실은 사랑을 불멸의 것으로 만드려고 하는 애절한 시도다. 꽃이 시들어버린들 꽃으로 남을 수 있게, 별이 폭발해버린들 계속 빛날 수 있게. 

인물들이 보이는 이러한 절박한 태도는, 소설의 골자를 형성하고 있는 '촬영'이라는 소재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경의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사건을 통해 시작되고 끝나는 소설 속에서 '(피사체의) 거리'와 '개입'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다. 렌즈를 통해 누군가를 보다보면, 그 상대가 한없이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도저히 닿을 수 없다는 기분에 빠지게 된다. 상대를 끊임없이 박제하고 있지만 상대를 온전히 촬영해서 담아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여전히 렌즈 너머, 거리 너머에 있기 때문에. 더욱이 상대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는 촬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다이렉트'와 '베리테' 사이에서, 이경은 표면적으로는 베리테에 손을 들어주지만, 그 마음의 카메라로는 다이렉트를 고수하고 있는 것 같다. 다큐 작업물은 진짜와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어딘가를 가리키지만, 이경의 마음 속에서는 모든 것이 진짜로 전부 남아있으니 말이다. 베리테는 분명 촬영의 대상을 변화시켰지만, 이경 또한 그로 인해 조금은 변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숨가쁜 여대생이라는 작가의 선택은 탁월했다. 반지하라는 현실에서 매 순간을 연명하는 이경을 돋보이게 하는 여혜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작가는 아마도 여혜를 통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혜의 입을 빌려서 이경에게 많은 단어들을 건네주고 싶었을 텐데도 정미경의 인물답게 여혜는 절제에 성공한다. 작가는 여혜라는 또 하나의 렌즈를 통해서 율을 촬영하는 이경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다이렉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혜가 율을 대하는 태도 또한 항상 다이렉트였다.

베리테에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끼어있다면, 다이렉트에는 숨기지 않는 욕망이 묻어난다. 베리테가 교묘한 접근을 통해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을 즐긴다면, 다이렉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독법이 작품을 단순한 삼각 구도로 치환시킴으로써, 다소 유치한 해석에 작품을 가둘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율을 두고 두 여자가 쟁탈전을 벌인다는 식의 읽기는 적절치 못하다. 이 작품에서 율은 심드렁하니 누워있는 사자 같은 게 아니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측하기 어려운 별과 같다. 이경과 여혜는 제각기 망원경을 들고서 이미 오래전에 소멸했을지도 모르는 그 별의 별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동경이 아닌 이유는, 그 별의 존재는 오로지 이경과 여혜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지구 상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인간들에 의해 발견되고 지명된 별들만이 그 나름의 이름과 생명을 얻게 된다. 율도 이와 같이, 적절하게 채택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별이었다. 그 별은 아마도 이미 폭발을 겪은 것 같고, 너무나 먼 거리에 있기에 우리는 그것이 폭발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눈으로 보게 된다. 그러니까 폭발 사실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과거의 별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는. 

정미경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미경이 발신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과거의 정미경을 바라보지만, 이미 그 자리에는 그녀가 없다. 후일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의 부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일단 슬픔은 그때로 미루어 두어도 좋을 듯하다. 아직은 그녀가 여기에 보인다.

가수는 입을 다무네
가수는 입을 다무네
정미경 저
예스24 | 애드온2





'화씨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강명, 2011, <표백>  (0) 2018.04.22
편혜영, 2015, <선의 법칙>  (0) 2018.04.15
만장  (0) 2017.03.13
작별의 농담(濃淡)  (0) 2017.01.04
동지  (0) 2016.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