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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문학

편혜영, 2015, <선의 법칙>

Something for Nothing
선의 법칙
편혜영 저
예스24 | 애드온2

오랫만에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어렵다. 그러나 굳이 어려운 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좋은 소설은 스스로 좋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아는 한 편혜영은 생의 더럽고 치사하고 뻔뻔스러운 면들에 주목해 온 작가다. 약간의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혐오감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동질적인 것에 대한 혐오, 즉 동족혐오이기 때문이다. 밉고 짜증나고 보기 싫은 상대이지만 바로 그 안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면, 상대를 부정하는 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부정되고 나면, 상대를 부정하는 나도 부정된다. 이러한 끔직스러운 교착상태를 편혜영의 작품들 안에서 자주 보았다.

이미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으며, 결코 과작이라고는 할 수 없을 편혜영에게 자꾸만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 가혹해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해보자. 뻣뻣한 인물들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인형극과 같은 소설이었다. 작중 인물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다. <기억전달자>에서처럼 색채를 잃은 채, 잿빛에 가까운 세계 속에서 그들은 다소 기계적이고 반응적(reactive)인 존재로 행동한다. 활동(activity)이 아닌 행동(action). 살 활(活)을 쓰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대체 이들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와닿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가(아마도 작가) 짜놓은 도식을 따라가기만 할 뿐, 이를 전복하려는 반역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섭렵하려는 시도에 있었을 것이다. 단편소설에서라면 과감한 생략이 괜찮을지 모르지만, 장편소설에서 그러한 생략은 독자를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초반을 점령한 신기정과 원도준의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일화에 그치고 말고, 신기정의 동생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바가 없으며, 조미연-부이-윤세오에 대해서는 지면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흥미로운 소재'로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단계 판매회사에서의 경험이 어떤 구체적인 주제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그저 장면들이 펼쳐지는 시간-공간으로만 기능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을 첫 작품으로 하여 편혜영을 만났다면, 부디 다른 작품을 읽어보길 바란다. <선의 법칙>은 최소한 내게는, 편혜영에게서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